The fundamentalist–modernist controversy is a major schism that originated in the 1920s and 1930s within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t issue were foundational disputes about the role of Christianity, the authority of the Bible, the death, resurrection, and atoning sacrifice of Jesus Christ. Two broad factions within Protestantism emerged: fundamentalists, who insisted upon the timeless validity of each doctrine of Christian orthodoxy, and Modernists, who advocated a conscious adaptation of the Christian faith in response to the new scientific discoveries and moral pressures of the age. At first, the schism was limited to Reformed churches and centered around the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 which had fundamentalist faculty members found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when Princeton went in a liberal direction. However, it soon spread, affecting nearly every Protestant denomination in the United States. Denominations that were not initially affected, such as the Lutheran churches, eventually were embroiled in the controversy, leading to a schism in the United States. By the end of the 1930s, proponents of theological liberalism had, at the time, effectively won the debate, with the Modernists in control of all mainline Protestant seminaries, publishing houses, and denominational hierarchies in the United States. More conservative Christians withdrew from the mainstream, founding their own publishing houses (such as Zondervan), universities (such as Biola University), and seminaries (such as Dallas Theological Seminary and Fuller Theological Seminary). This would remain the state of affairs until the 1970s, when conservative Protestantism emerged on a larger scale in the United States, resulting in the rise of conservatism among the Southern Baptists, Presbyterians, and others. (en)
근본주의자–현대주의자 논쟁 (Fundamentalist–Modernist Controversy )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미국 북장로교회 안에서 분열을 말한다. 기독교의 근본적인 주제들에 대한 논쟁이었는데 ,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 예수의 부활, 대속에 대한 것들이었다. 두개의 세력으로 형성되어 전통적인 기독교 정통주의자인 복음주의자들과 시대에 맞게 변화된 신앙체계를 주장하는 현대주의자들이 충돌하였다. 첫번째 분열은개혁주의 기독교와 프린스턴 신학교가 중심이 되었는데 곧 미국 전체 기독교의 모든 교파로 퍼져나갔다. 처음에는 영향을 받지 않던 루터교회도 논쟁으로 분열되었다. 1930년 끝에서 신학적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자들이 효과적으로 논쟁에서 승리하고 주된 개신교 신학교와 출판사를 지배하였다. 이에 주된 교단으로부터 탈퇴한 보수주의 기독교인들은 존더반 출판사와 , , 달라스 신학교, 풀러 신학교,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설립하였다. 1970년에 와서는 보수적 기독교의 남 침례교회와 장로교회가 다시 부활하였다. (ko)
근본주의자–현대주의자 논쟁 (Fundamentalist–Modernist Controversy )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미국 북장로교회 안에서 분열을 말한다. 기독교의 근본적인 주제들에 대한 논쟁이었는데 ,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 예수의 부활, 대속에 대한 것들이었다. 두개의 세력으로 형성되어 전통적인 기독교 정통주의자인 복음주의자들과 시대에 맞게 변화된 신앙체계를 주장하는 현대주의자들이 충돌하였다. 첫번째 분열은개혁주의 기독교와 프린스턴 신학교가 중심이 되었는데 곧 미국 전체 기독교의 모든 교파로 퍼져나갔다. 처음에는 영향을 받지 않던 루터교회도 논쟁으로 분열되었다. 1930년 끝에서 신학적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자들이 효과적으로 논쟁에서 승리하고 주된 개신교 신학교와 출판사를 지배하였다. 이에 주된 교단으로부터 탈퇴한 보수주의 기독교인들은 존더반 출판사와 , , 달라스 신학교, 풀러 신학교,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설립하였다. 1970년에 와서는 보수적 기독교의 남 침례교회와 장로교회가 다시 부활하였다. (ko)
The fundamentalist–modernist controversy is a major schism that originated in the 1920s and 1930s within the Presbyterian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At issue were foundational disputes about the role of Christianity, the authority of the Bible, the death, resurrection, and atoning sacrifice of Jesus Christ. Two broad factions within Protestantism emerged: fundamentalists, who insisted upon the timeless validity of each doctrine of Christian orthodoxy, and Modernists, who advocated a conscious adaptation of the Christian faith in response to the new scientific discoveries and moral pressures of the age. At first, the schism was limited to Reformed churches and centered around the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 which had fundamentalist faculty members found Westminster Theologi (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