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in Gyu-sik (original) (r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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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 Gyu-sik (also spelt as Shin Kyu-sik: Korean: 신규식, Hanja: 申圭植, February 22, 1880 - September 25, 1922) was a Korean Independence Activist who had served as a cabinet member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when Korea was under Japanese ru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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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o:abstract Shin Gyu-sik (also spelt as Shin Kyu-sik: Korean: 신규식, Hanja: 申圭植, February 22, 1880 - September 25, 1922) was a Korean Independence Activist who had served as a cabinet member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when Korea was under Japanese rule. (en) 신규식(申圭植, 1880년 2월 22일 (음력 1월 13일) ~ 1922년 9월 25일)은 대한제국의 군인, 한국의 공화주의 독립혁명가이다. 충청북도 청원 출신으로 본관은 고령이다. 아버지는 신용우(申龍雨)이다. 별명은 신성(申誠)·신목성(申木聖), 아호는 예관(睨觀)·여서(余胥)·일민(一民)·청구(靑丘)·한인(恨人) 등이 있다. 중국식 이름으로는 신정(申檉)이라 한다. 대한제국에서 군 장교로 활동하다가 경술국치를 맞자, 이듬해인 1911년에 청나라 상해로 망명해 쑨원과 천치메이 등의 중국 동맹회 간부들과 친교를 맺어 중국 동맹회에 가입한 뒤 신해혁명에도 참여했다. 이어 1912년에 7월에 '동주공제'(同舟共濟)라는 뜻의 동제사(同濟社)를 조직하여 공화주의 독립혁명을 총괄 지도하였으며, 동해에 신해혁명계 인사들과 친교를 맺기 위해 신아동제사를 조직하였는데 이 단체의 총재 박은식을 비롯해 김규식과 신채호 및 조소앙, 홍명희, 여운형, 조동호, 장건상 등이 가입해 있었다. 이들은 1917년 7월에 공화주의 독립선언서인 대동단결선언을 발표했다. 1918년에 여운형을 지도하여 신한청년당의 조직을 지원했다. 이듬해 1919년 대한민국 임시 정부 국무총리 겸 외무총장이 되어 1921년 11월 3일에 쑨원이 이끄는 중화민국 정부로부터 임정의 승인과 지원을 얻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22년에 단식으로 몸이 악화된 상태에서 병사했다. (ko) 申圭植(韓語:신규식;1879/1880年-1922年9月25日),又名申柽(chēng),字睨观,别号青丘、一民、余胥等,韩国独立运动家,诗人、文学家、教育家、外交家,参加辛亥革命的唯一外国人,也是参加中国资产阶级革命的第一位韩国人,原大韩民国临时政府政议院副议长、代国务总理兼法务总长、外务总长、财务总长和劳动总办。 申圭植出生于朝鲜忠清北道文义郡桂山里的一个书香门第望族家庭,早年曾从事义兵运动和教育救国。日本吞并朝鲜半岛后,他于1911年流亡中国,加入中国同盟会,并参加了辛亥革命。他与孙中山、黄兴、宋教仁、陈其美等当时中国的革命党人领袖关系密切,相互支持,友谊深厚。为培养韩国独立运动人才,他在上海组建了和博达学院,并资助韩国学生到中国大学、军校学习或留学欧美。为宣传韩国独立运动,他于1920年10月在上海创办《震坛》周刊。 申圭植对大韩民国临时政府的成立和发展有特殊贡献。1921年5月,在李承晚离开上海回美国后,他担任大韩民国临时政府代国务总理兼法务总长、外务总长、财务总长和劳动总办,实际负责掌管临时政府事务。1921年10月3日,申圭植以大韩民国临时政府特使的身份到访孙中山在广州刚刚成立的广州中华民国政府,双方相互承认,并正式建立外交关系,大大提高了大韩民国临时政府和孙中山护法政府的国际地位,成为中韩近代关系史上的一段佳话。 申圭植留有《韩国魂》和诗文集《儿目泪》。 (z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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