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베스트 가요 콜렉션 / 연도별가요 (original) (raw)
# '김창완' 형제 파워, 산울림
순수한 흥미 차원에서 세 형제가 시작한 록밴드 산울림(사진)의 등장은 한국 록음악의 특수한 유산이 활화산처럼 급작스레 분출한 것 같았다. 김창완이 1975년 근대를 제대하고 1977년 대학을 졸업한 후에 국내 모 은행에 입사원서를 내놓은 상태에서 김창완 형제는 '무이(無異)' 라는 이름으로 '문 좀 열어줘'로 출전하여 대학가요제 예선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큰형인 김창완이 이미 졸업한 상태라 자격조건에 맞지 않는다며 본선 진출자격이 박탈 된다.
그러나 그동안 작곡해 놓은 곡만해도 100여 곡이나 되었고 간단히 그간의 음악활동을 마감하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많았기에, 형제들은 기념으로 판하나 내고 각자의 길을 가기로 결정하게 된다. 서라벌 레코드사에서 지인들에게 한장씩 돌릴려고 만든 앨범이 우연하게도 라디오 방송에 나오게 되면서 갑자기 히트를 치게 되는데, 그 앨범이 당시 50만장 이상 이라는 엄청난 앨범 판매고를 올리게 되며 데뷔한지 20일만에 스타가 되어 산울림 신드롬을 일으키게 만들었던 희대의 역작 '산울림1집'이었다.
1970년대 후반, 그들은 펑크록 스타일 특유의 아마추어적인 연주와 노래, 프로그레시브 록과 애씨드 록에서 경험할 수 있는 깊이와 혼란, 포크의 순수한 감성, 초현실주의와 동요의 극을 오가는 가사, 이 모든 요소를 실험적이면서 파격적으로, 동시에 대중적으로 혼융했다. 1977년 데뷔 앨범이자 한국 대중음악 사상 '가장 문제적 데뷔 앨범'으로 평가받는 [아니 벌써]로 이른바 '캠퍼스 그룹'이 보여줄 수 있는 싸이키델릭 록 사운드의 극한을 보여주었다.
1978년 해 말, 각 레코드 회사가 집계한 '올해 가장 많이 팔린 디스크 6장'에는 산울림의 음반이 2장이나 포함됐으니 '1978년도는 산울림의 해'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출처 : 박봉팔 닷컴-[가요] [추억은 노래따라] 7080가수(82) - 산울림, K-POP Archive 가수 부가정보]
※ 1978년에 히트됐던 노래중 50곡을 가나다 순으로 선곡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