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 레터] 🍊여대가 사라지는 날 (original) (raw)

여대가 사라지는 날

최근 서울 동덕여대에서 남녀공학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시작한 학내 농성과 시위가 사그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동덕여대는 물론 덕성여대, 성신여대 등 공학 전환을 검토 중인 다른 여대에서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긴장은 이어지고 있어요.

이번 사태는 지난 7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동덕여대가 남녀공학 전환 논의를 했다는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불거졌습니다. 🖋️ 총학생회가 학교에 해명을 요구했는데, 뚜렷한 답을 듣지 못하자 지난 11일부터 건물 점거 농성과 수업 거부가 이어지고 있어요. 총학생회는 8일 입장문에서 "안건을 논의하면서 대학본부는 지금까지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8000 동덕인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했죠. 이에 김명애 총장은 "아직 정식 안건으로조차 상정되지 않은 상태"라며 "지성인으로서 대화와 토론의 장이 마련돼야 하는 대학에서 이 같은 폭력사태가 발생 중인 것을 매우 비통하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여자가 무슨 공부야"라고 하던 시대, 여성의 교육권을 보장하고 이 사회에 성평등이라는 가치를 심기 위해 만들어진 여대는 시간이 흐르며 자연히 사라졌습니다. 현재 전국에 4년제 7곳, 전문대 7곳만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비교적 평등하게, 누구에게나 교육 기회가 열려있으니까요. 이런 시각에서는 "왜 아직도 여대가 필요해?"라고 말할 수도 있죠.

게다가 학교 입장에서는 남녀공학 전환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저출생 영향으로 학령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고, 학교 자체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 성신여대에서는 최근 국제학부에 외국인 남학생 입학을 허용하자 재학생들이 반대 시위를 열었는데요. 학교 관계자는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만큼 외국인에 한해 남학생을 입학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현실적인 고민이 읽히는 것 같아요. 'K컬쳐'라는 명분을 쓰고는 있지만 결국에는 줄어드는 학생 수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요.

하지만 그 과정이 민주적이지 않고,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것이라면 당연히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겠죠. 단순히 "학생이 줄어드니까, 남학생도 받자!"고 하는 건 여대의 설립 취지와 목적, 그리고 여전히 여대가 주는 상징성을 훼손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송희 동덕여대 총력대응위원회 공동위원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페미니스트로 의심되는 여성을 향한 검열, 숏컷 여성 폭행 등 여성에 대한 폭력이 여전한 상황에서 동덕여대는 비교적 안전한 울타리이자 생존의 공간이었다. 스스로 공학으로 전환하는 것은 학교의 설립 취지와 반하는 것이다."

동덕여대를 넘어서 다른 학교의 학생들까지 연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데엔 '여성이 안전할 수 있는 공간', '여성이 주인이 될 수 있는 공간'으로써 여대의 역할이 여전히 크기 때문일 겁니다. 여성을 향한 혐오와 차별이 만연하고 성범죄도 끊이지 않는 이 사회에서 여대는 물리적으로 안전한 공간이자, 학문적으로도 여성주의적 관점을 활발하게 논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남녀공학 대학과 달리 여대에선 '여성 노동 정책 연구', '여성과 법 이야기' 등 강의를 운영하고 있어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남성중심적 사회 구조와 차별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러면 앞으로 여대의 길은 어디로 이어지게 될까요. 🧐 이화여대 김혜숙 전 총장은 2017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대는 자기 소멸을 위해 달려가야 하는 대학"이라고 언급한 적 있습니다. "여자들이 의학·공업·농업 같은 곳까지 획기적인 성과를 낼 때까지 달려가야 하고, 여대는 이를 위한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며 "여성들도 자신의 힘을 스스로 알 수 있고 깨칠 수 있을 때 여대는 아마도 사라질 것"이라고요.

여대의 목적이 그저 '여성들만의 집단'을 유지하는 데 그쳐선 안 될 것입니다. 100여년 전 여성들이 누렸던 것처럼 더 많은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한 연구와 연대를 이어나가고, "주변인의 관점과 경험에서 새 지식을 만들어 가는 곳(이은아 이화여대 교수)"으로써 열심히 나아가야겠죠. 그래서 여성들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한명의 인간으로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받고, 결국 여대는 소멸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여대가 사라지는 날은 바로 그런 날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