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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 Yuk or Kim Yuk (Hangul: 김육; Hanja: 金堉; 1580 – September 1658) was a Korean Neo-Confucian scholar, politician and writer of the Korean Joseon Dynasty. His nickname was Jamgok (잠곡, 潛谷), Hoejeongdang (회정당, 晦靜堂), a courtesy name was Baekhu (백후, 伯厚), and his posthumous name was Munjeong (문정, 文貞). He came from the Cheongpung Kim clan (Hangul: 청풍 김씨, Hanja: 淸風金氏). Gim Yuk served as prime minister of the Joseon dynasty in 1651 and 1654 through 1658. He was Grandfather of Queen Myeongseong (명성왕후, 明聖王后) and 6G-Great-Grandfather of Queen Hyoui (효의왕후, 孝懿王后). (en) 김육(金堉, 1580년 8월 23일(음력 7월 14일)~1658년 10월 1일(음력 9월 5일))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 실학자, 사상가, 작가, 정치가, 철학자이며, 효종·현종 연간에 대동법의 확대 시행을 주장, 추진하였으며 화폐(동전)의 보급에 힘썼다.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 회정당(晦靜堂),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1638년(인조 16) 에 재직 중 대동법을 제창 건의하였고, 수차(水車)를 만들어 보급하였으며, 전후복구 사업을 시도하였고, 《구황촬요》(救荒撮要)와 《벽온방》 등을 증보·재간행하였다. 인조 반정 직후 학행으로 천거되어 관직에 나갔다가 그 뒤 과거에 급제하여 음성현감, 성균관전적,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했다. 그 뒤 충청감사 재직 중 충청도 지역에서 시범으로 대동법을 실시하게 했으며, 호서대동법이 실시될 때 호조 판서로서 실무를 지휘한 이시방과 함께 대동법 시행의 주역으로 꼽힌다. 병조참판, 형조판서, 의정부우참찬, 사헌부대사헌, 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643년과 1645년 청나라에 사절로 다녀온 뒤 화폐의 주조·유통을 건의하여 평안도부터 추진하였고, 수레의 제조, 보급을 확산시켰으며, 시헌력(時憲曆)의 제정·시행을 건의하고, 《유원총보(類苑叢寶)》 《종덕신편(種德新編)》 등을 저술하였다. 또한 그는 1636년(인조 14년) 로서 명나라의 연경에 다녀왔는데, 그는 조선에서 명나라에 보내는 마지막 공식 사신이었다. 충청도에 대동법을 시행하는 데 성공하였고, 아울러 화폐 이용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주전사업을 건의, 민간에 주전(鑄錢)의 유통에도 성공하였다. 대동법의 실시를 한층 확대하고자 <호남대동사목(湖南大同事目)>을 구상하고, 이를 1657년 7월에 효종에게 바치면서 전라도에도 대동법을 실시할 것을 건의하였다. 한국 최초의 태양력인 시헌력을 도입하여 양력 사용을 보급시키기도 했다. 1651년부터 1654년, 1655년부터 1658년까지 의정부영의정을 역임하였다. 자(字)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 초호는 회정당(晦靜堂)이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며, 본관은 청풍(淸風)이다.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사람인 김식(金湜)의 고손자이다. 현종비 명성왕후의 친정 할아버지이며 김석주, 김석연의 할아버지, 청풍부원군 김우명, 증 청릉부원군 김좌명의 아버지이다. 정조의 장인 청은부원군 김시묵은 김육의 5대손이다. 조호익, 성혼, 윤두수, 윤근수, 김장생의 문하에서 수학하다 김상헌의 문인이 되었다. 경기도 출신이다. (ko) 金堉(朝鮮語:김육/金堉 Gim Yug ?,1580年-1658年9月)韓國朝鮮王朝中期的文臣及實學者、政治家、經世家。他是的施行者。字伯厚(백후)、號潛谷(잠곡)、晦靜堂(회정당)、諡號文貞(문정)、本貫。朝鮮顯宗妃明聖王后的親祖父,1651年-1654年和1655年-1658年間任朝鮮的領議政。 (z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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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 Yuk or Kim Yuk (Hangul: 김육; Hanja: 金堉; 1580 – September 1658) was a Korean Neo-Confucian scholar, politician and writer of the Korean Joseon Dynasty. His nickname was Jamgok (잠곡, 潛谷), Hoejeongdang (회정당, 晦靜堂), a courtesy name was Baekhu (백후, 伯厚), and his posthumous name was Munjeong (문정, 文貞). He came from the Cheongpung Kim clan (Hangul: 청풍 김씨, Hanja: 淸風金氏). Gim Yuk served as prime minister of the Joseon dynasty in 1651 and 1654 through 1658. He was Grandfather of Queen Myeongseong (명성왕후, 明聖王后) and 6G-Great-Grandfather of Queen Hyoui (효의왕후, 孝懿王后). (en) 金堉(朝鮮語:김육/金堉 Gim Yug ?,1580年-1658年9月)韓國朝鮮王朝中期的文臣及實學者、政治家、經世家。他是的施行者。字伯厚(백후)、號潛谷(잠곡)、晦靜堂(회정당)、諡號文貞(문정)、本貫。朝鮮顯宗妃明聖王后的親祖父,1651年-1654年和1655年-1658年間任朝鮮的領議政。 (zh) 김육(金堉, 1580년 8월 23일(음력 7월 14일)~1658년 10월 1일(음력 9월 5일))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유학자, 실학자, 사상가, 작가, 정치가, 철학자이며, 효종·현종 연간에 대동법의 확대 시행을 주장, 추진하였으며 화폐(동전)의 보급에 힘썼다. 자는 백후(伯厚), 호는 잠곡(潛谷), 회정당(晦靜堂),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1638년(인조 16) 에 재직 중 대동법을 제창 건의하였고, 수차(水車)를 만들어 보급하였으며, 전후복구 사업을 시도하였고, 《구황촬요》(救荒撮要)와 《벽온방》 등을 증보·재간행하였다. 충청도에 대동법을 시행하는 데 성공하였고, 아울러 화폐 이용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주전사업을 건의, 민간에 주전(鑄錢)의 유통에도 성공하였다. 대동법의 실시를 한층 확대하고자 <호남대동사목(湖南大同事目)>을 구상하고, 이를 1657년 7월에 효종에게 바치면서 전라도에도 대동법을 실시할 것을 건의하였다. 한국 최초의 태양력인 시헌력을 도입하여 양력 사용을 보급시키기도 했다. 1651년부터 1654년, 1655년부터 1658년까지 의정부영의정을 역임하였다. (ko) |